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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게나 살아가고 비어있는 곳을 채운다. 본문

안정!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비어있는 곳을 채운다.

쉐라프 2025. 4. 30. 16:33

별거 없는 인생인데도, 이상하게 살아지고 있다.
뭔가 의지를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고, 큰 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냥 눈을 뜨고, 숨을 쉬고, 그렇게 하루를 보낸다.
오늘도 그렇게 아무렇게나 살아가고 있다.

창밖은 맑고 햇살도 좋다.
바람도 시원하고, 나무 잎은 반짝인다.
사람들은 오늘도 부지런하다.
어딘가로 향하고, 무언가를 이뤄내며, 하루하루를 뜨겁게 보낸다.
그 안에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부러움보다는 묘한 거리감이 든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게임을 하고, 인터넷을 떠돌고, 멍하니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보면 하루가 지나 있다.
시간이 무색하게도 빠르게 흐른다.

무언가를 하고 있는 건 맞는데,
그게 뭔가 남았냐고 물으면 고개를 젓게 된다.
그래도 이상하게, 뭔가를 했다는 감정은 남는다.
채워지지는 않지만, 비워두지도 못한 상태.
그저 무언가로 빈 자리를 얼기설기 메우고 있다.
그것이 게임이든, 유튜브든, 혼잣말이든.

살아간다는 건 결국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꼭 의미 있고, 가치 있고, 멋진 일만 해야 한다는 건 누가 만든 기준일까.
나는 지금, 나만의 방식으로 뭔가를 하고 있는 중이다.
지극히 비효율적이고, 멍청하고,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서 나는 나름대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경쟁하고 있다.
학벌, 스펙, 연봉, 인간관계, 행복지수…
세상은 늘 누군가와 비교하게 만든다.
그 경쟁의 장에서 나는 자주 밀려나고,
때로는 아예 발도 못 들여놓는다.
그런데도 나는 이상하게 느낀다.
그래도 이렇게 사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고.
이런 내 삶에도 나름의 리듬과 온기가 있다는 것을.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이제는 아무도 남지 않은 경기장에서
나 혼자 멍하니 서 있는 기분.
박수도 없고, 시선도 없고, 목적도 없다.
그런데 그 고요함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난다.
모든 경쟁이 멈춘 자리에서 비로소
나와 나 자신이 맞붙는다.
그 싸움은 지독히도 길고, 끝도 없다.

하지만 한편으론 이렇게 생각한다.
비어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어딘가를 채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빈 곳을, 아주 천천히 채워가고 있다.
쓰다 남은 감정으로,
버려진 기억으로,
별 의미 없는 하루의 파편으로
조금씩 조금씩 메워가고 있다.

그게 맛있는 음식일 수도 있고,
어디서 본 드라마의 한 장면일 수도 있고,
문득 떠오른 옛 친구의 이름일 수도 있다.
작고 별것 아닌 것들로 비어 있는 마음을 메운다.
그리고 또 그렇게 하루를 넘긴다.

어쩌면 인생은
그저 아무렇게나 살아가며
비어 있는 곳을 천천히 채워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크게 남을 일도 없고, 화려한 성취도 없지만
그 안에 분명히 나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그걸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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